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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

디지털 위안화(CBDC)와 미국의 디지털 달러, 누가 주도권을 쥘까?

디지털 화폐 전쟁, 통화 패권의 시대가 바뀌고 있다

21세기 초반, 미국 달러는 명실상부한 세계 기축통화의 절대 강자였다. 무역, 원자재 결제, 국제 송금 등 대부분의 글로벌 경제 활동이 달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미국은 통화 발행국이라는 이점을 바탕으로 경제적 영향력과 금융 지배력을 동시에 행사해왔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며 이 지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가 빠르게 상용화 단계에 도달하고, 미국이 이에 대해 디지털 달러(CBDC) 발행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두 국가 간 디지털 통화 주도권 경쟁은 새로운 형태의 경제 전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CBDC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금융 시스템의 재구성, 자본 흐름의 통제, 그리고 국가 간 경제력 투사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위안화와 디지털 달러의 경쟁은 기술을 넘어 지정학적, 정책적, 이념적 주도권 다툼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위안화와 디지털 달러의 개발 현황, 기술 구조, 전략적 목표를 비교 분석하고, 과연 누가 디지털 통화 시대의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은지를 다각도로 살펴본다.

디지털 위안화(CBDC)와 미국의 디지털 달러, 누가 주도권을 쥘까?


디지털 위안화: 빠른 실행력과 통제력 중심의 전략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CBDC) 개발과 적용에 있어서 가장 앞서 있는 국가 중 하나다. 인민은행은 2014년부터 내부 연구를 시작해 2020년부터 선전, 쑤저우, 청두, 베이징 등 주요 도시에서 실사용 시범 운영을 실시했고,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도 외국인에게 디지털 위안화 사용을 허용하면서 글로벌 시험대에 올렸다.

디지털 위안화는 이중 계층 구조(two-tier system)를 택했다. 인민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를 상업은행이 중개 유통하며, 일반 국민은 은행 또는 전용 앱을 통해 사용한다. 이 구조는 기존 금융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국가가 유통 구조를 완전히 추적·통제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또한, 중국 정부는 디지털 위안화를 통해 ▲현금 없는 사회 구축, ▲자금세탁 방지, ▲세원 관리 강화, ▲국내 소비 활성화 등의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려 하고 있다. 더불어 국제 무역에서도 디지털 위안화를 국제 결제 수단으로 확장하려는 의도가 명확하다. 예를 들어, ‘디지털 실크로드’ 구상과 함께 위안화 블록체인 기반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장점은 빠른 실행력, 대규모 인프라, 정부 주도의 강력한 추진력이다. 하지만 폐쇄적 운영, 개인정보 침해 우려, 국제 신뢰도 부족 등은 국제화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디지털 달러: 신중함 속의 영향력 유지 전략

미국은 아직 디지털 달러(CBDC)를 공식적으로 발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방준비제도(Fed)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CBDC의 필요성과 한계,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 민간 금융 산업에 미칠 영향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2022년 Fed는 MIT와 함께 "Project Hamilton"이라는 이름으로 CBDC 프로토타입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실험에서는 초당 수십만 건의 트랜잭션을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시스템을 구현했고, 이후 디지털 달러에 적합한 기술적 구조와 정책 설계의 방향성을 검토 중이다.

미국이 디지털 달러 발행에 소극적인 듯 보이는 이유는, 현재도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화가 반드시 긍정적 효과만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 시스템의 안정성과 민간 은행 산업의 균형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은 디지털 달러가 불가피한 흐름임을 인식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가 국제 무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할 경우, 자국 달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CBDC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다.

미국의 강점은 글로벌 신뢰도, 금융 인프라의 범용성, 달러에 대한 높은 국제 의존도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신중한 접근은 기술 주도권을 중국에 넘길 수 있는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기술 비교와 국제 전략: 플랫폼 경쟁 vs. 생태계 신뢰

디지털 위안화와 디지털 달러는 기술적으로도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다. 중국은 상대적으로 중앙 집중형 설계에 가깝고, 미국은 분산원장(DLT) 기반의 하이브리드 설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는 두 국가의 정치·경제 시스템 차이에서 비롯된 전략적 선택이다.

디지털 위안화는 빠른 결제, 오프라인 사용, 국가 추적 가능성 등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국내 시장을 안정적으로 장악한 후 이를 점진적으로 국제 시장에 확대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일대일로(一带一路) 정책에 참여하는 국가들과 디지털 무역망을 연계하여, 자국 플랫폼 기반의 국제 결제 생태계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국제 금융 규범과 기존의 글로벌 시스템을 활용하여, 디지털 달러가 등장하더라도 기존 시스템과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전략을 선호한다. 미국이 선호하는 방식은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역할을 확대하면서도, 중앙은행의 직접 발행보다는 민간과의 협업 모델을 택하는 것이 특징이다.

결국 이 경쟁은 단순한 기술 전쟁이 아니라,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신뢰 생태계 경쟁이다. 중국은 빠르게 물리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식이고, 미국은 이미 존재하는 글로벌 금융 질서 위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덧씌우는 방식이다.


결론: 통화 패권의 미래, 속도보다 ‘신뢰’가 승패를 가른다

디지털 위안화와 디지털 달러의 경쟁은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다. 그것은 금융의 본질, 통화 정책의 철학, 국제 관계에서의 신뢰에 관한 문제다.

중국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미 수억 명이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해봤고, 실제 결제와 급여 지급, 세금 납부에도 사용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의 상용화는 거의 완성 단계에 있으며, 국제화를 위한 다양한 전략을 준비 중이다.

반면 미국은 아직 디지털 달러를 발행하지 않았지만, 국제 통화 시스템의 중심이라는 절대적 이점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기술이 늦더라도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 법적 안정성, 규제 신뢰도를 통해 여전히 통화 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입장이다.

결국 디지털 통화 시대의 승자는 단순한 ‘기술의 빠르기’가 아니라, 글로벌 신뢰와 수용성을 확보한 국가가 될 것이다. 지금은 중국이 속도를 앞서지만, 국제 사회가 디지털 위안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디지털 통화 주도권은 단순히 ‘누가 먼저 발행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잘 설계했고, 누가 더 넓은 수용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 경쟁은 지금 시작되었고, 앞으로 10년간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