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화폐

CBDC에 적합한 블록체인 플랫폼 비교

soyeon-news 2025. 8. 19. 17:00

CBDC 설계의 핵심, 플랫폼 선택이 미래를 결정한다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는 단순히 화폐의 디지털 전환을 넘어, 국가 금융 시스템의 핵심 인프라를 새롭게 구축하는 과정이다. 이에 따라 어떤 기술을 기반으로 CBDC를 설계하고 운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선택지 중 하나가 되었다.

이때 핵심 기술로 부상하는 것이 바로 블록체인(Blockchain)이다. 블록체인은 데이터 위·변조가 어렵고, 거래 기록의 투명성과 보안성이 높은 시스템이다. 그러나 모든 블록체인이 CBDC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블록체인마다 구조, 처리 속도, 합의 알고리즘, 확장성, 프라이버시 보호 수준 등이 다르며, 이는 CBDC 설계 목적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현재 CBDC 구현을 위해 검토되고 있는 주요 블록체인 플랫폼들을 비교 분석하고, 각 플랫폼의 장단점과 실제 사용 가능성을 살펴본다. 국가의 통화 주권, 금융 안정성, 디지털 경제 질서를 지탱할 기술을 선택하는 일은 단순한 기술 채택을 넘어 정책적 결정이자 철학적 선택이다.

CBDC에 적합한 블록체인 플랫폼 비교


하이퍼레저 패브릭(Hyperledger Fabric): 기관 중심의 프라이빗 블록체인

하이퍼레저 패브릭(Hyperledger Fabric)은 리눅스 재단(Linux Foundation) 주도로 개발된 기업 및 기관용 프라이빗 블록체인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은 고성능·고확장성·모듈화 구조를 특징으로 하며, 중앙은행과 같은 기관이 요구하는 통제 가능성과 보안성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가장 큰 특징은 퍼미션드 네트워크(Permissioned Network) 방식이라는 점이다. 이는 참여 노드가 사전에 승인된 기관에만 허용되는 구조로, 거래 내역에 대한 투명성은 유지하면서도 참여자 통제를 가능하게 한다. 한국은행의 CBDC 기술 검증 사업에서도 실제로 하이퍼레저 패브릭이 실험 플랫폼으로 사용된 바 있다.

장점으로는 ▲높은 TPS(초당 거래 처리 속도), ▲기밀성 유지 기능(Channel 및 Private Data 기능), ▲스마트 컨트랙트 유연성, ▲기업용 지원 생태계 등이 있다. 그러나 단점은 ▲완전한 분산 구조가 아니라는 점, ▲국제적인 호환성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이다.

CBDC와의 적합성 측면에서는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선택지로 꼽히며, 특히 초기 도입 단계에서 중앙은행의 통제권 유지가 중요한 국가들에게 유리한 플랫폼이다.


코다(Corda): 금융기관 친화적 구조와 유연한 프라이버시 설정

R3 컨소시엄에서 개발한 코다(Corda)는 기존의 블록체인 플랫폼과는 다른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코다는 금융기관을 위한 DLT(분산원장기술)을 지향하며, 실제로 시중은행·보험사·증권사 등 200개 이상의 금융기관이 테스트 및 도입을 진행하고 있는 플랫폼이다.

코다의 가장 큰 특징은 거래 당사자 간의 프라이빗 처리다. 모든 거래가 전체 네트워크에 브로드캐스트되지 않고, 해당 거래 당사자 간에만 기록되고 공유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거래 기밀성이 뛰어나다. 이는 중앙은행이 프라이버시 문제를 고려할 때 매우 유용한 구조다.

또한 코다는 ▲KYC(고객확인제도), AML(자금세탁방지), 법적 규제 대응 등을 위한 모듈이 기본적으로 내장되어 있으며, ▲레거시 시스템과의 통합이 용이하고, ▲스마트 컨트랙트도 자바(Java) 같은 상용 언어로 개발 가능해 실무자 중심의 접근성도 좋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코다는 엄밀히 말해 ‘블록체인’이라기보다 ‘분산원장 기술(DLT)’에 더 가깝고, ▲퍼블릭 생태계가 부족해 개방성과 확장성에서는 다소 약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다는 금융산업에 특화된 설계와 중앙집중 관리에 적합한 구조 덕분에, CBDC 초기 구현에 현실적인 플랫폼으로 평가받는다.


컨센시스 쿼럼(Consensys Quorum): 이더리움 기반의 하이브리드 구조

컨센시스 쿼럼(Quorum)은 이더리움(Ethereum)을 기반으로 하여 개발된 기업용 퍼미션드 블록체인 플랫폼이다. 원래는 JP모건이 개발했지만, 이후 블록체인 개발사 컨센시스(Consensys)가 이를 인수하여 발전시켜 왔다.

쿼럼의 강점은 ▲이더리움 기반이라는 점에서 높은 확장성과 스마트 컨트랙트 호환성을 보장하며, ▲프라이버시 기능을 강화한 구조로 일반 거래와 프라이빗 거래를 분리해 처리할 수 있다. 또한, 이더리움 메인넷과의 연결성을 통해 장기적으로 CBDC와 탈중앙 금융(DeFi)의 연결성까지 고려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CBDC에 적용할 경우, ▲상업은행·결제 사업자 등과의 민간 협업이 용이하고, ▲스마트 컨트랙트 기반의 정책 실행 자동화가 가능하며, ▲온·오프라인 병행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모듈 개발도 활발하다.

다만 쿼럼은 ▲이더리움 기반 특성상 초기 설정이 복잡할 수 있고, ▲거래량이 많을 경우 처리 속도 및 안정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퍼블릭-프라이빗 간 하이브리드 구조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쿼럼은 CBDC의 유연한 설계와 민간 협업 전략에 적합한 플랫폼으로서, 중장기적인 기술 진화를 염두에 둔 국가들에게 특히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결론: CBDC에 적합한 블록체인, 정답은 ‘기술+정책+철학’의 조합

CBDC는 단순한 디지털 결제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 경제를 운영하고 국민의 자산을 보호하며, 통화주권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도구다. 따라서 그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플랫폼의 선택은, 기술적 우수성만으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 하이퍼레저 패브릭은 통제성과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국가에 적합하다.
  • 코다는 금융기관 중심의 폐쇄형 거래에 강점을 보이며, 기밀성과 규제 대응 측면에서 강력한 장점이 있다.
  • 컨센시스 쿼럼은 민간과의 협업과 확장성 측면에서 유연한 플랫폼으로, 정책 다양성이 요구되는 환경에 잘 맞는다.

궁극적으로 CBDC는 국가별 경제 구조, 사회 문화, 법제도, 기술 인프라 등에 따라 설계가 달라져야 하며, 그에 따라 블록체인 플랫폼도 맞춤형으로 선정되어야 한다.

CBDC에 적합한 블록체인 플랫폼이 하나로 정해질 수는 없다. 다만, 그 선택은 기술적 타당성과 함께 국가의 금융 철학과 디지털 비전이 반영된 결정이어야 한다.